일하(지 못하)거나 놀(지 못하)거나, 살아 있(지 않)습니다
2022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52주기 기억주일이자 청년주관예배에서 나눈 글이다.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거예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2시 정도? 저는 왠지 잠이 안 와서 뒤척이고 있었고, 잠이 안 오던 차에 어떤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롯데월드에서 한 시간에 사람이 얼마나 입장하느냐에 관한 계산이었어요. 그러고는 당시 다니던 교회 예배가 끝나고 바로 롯데월드에 간다면 몇 시인지, 롯데월드는 몇 시에 여는지, 그러면 결국 내가 도착해서 입장할 때는 몇 명째일지 같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했어요. 계산을 끝내고 저는 대뜸 일어나 그날 월요일에 갈 수학 학원 숙제를 다 마쳤습니다.
상당히 충동적이었던 이 행동은, 당시 유례없는 롯데월드의 무료개장 소식을 듣고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일요일에 숙제에 매달릴 걱정 없이 토요일에 끝내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롯데월드에 가서 무료로 이것저것 즐길 생각이었고, 밥이나 그런건…아무튼 그런 생각이었어요. 줄이 길어지기 전에 가서 뭐라도 타 놔야지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근데 막상 예배가 끝나니 배가 고프고, 청소년부 친구들이랑 밥도 먹어야겠고, 밥을 먹고 보니 예상한 시간을 훌쩍 넘겼고, 지금 가봐야 뭐 없겠다 싶어서 그냥 안 갔어요.

제가 가지 않은 시각, 롯데월드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10시가 되기도 전에 입장객 수가 3만5천 명에 달했다고 해요. 이 숫자는 보통 피크로 여겨지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의 ‘누적’ 입장객 수라고 합니다. 잠실역까지 들어찬 인원은 6만 명 정도라고 하고요. 이런 인원을 200명 남짓의 안전 요원이 통제하고 있었고, 증원이 필요하겠다는 의견 역시 인건비를 줄이려는 윗선까지 닿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날 3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어요. 오전에 갈까 말까 하다가 안 간 저는 저녁에 뉴스를 보고 오싹했어요. 근데, 지금에 와서 정말 오싹한 건, 해당 사건이, 휴일에 한 직원이 롯데월드의 어트랙션인 ‘아틀란티스’를 타다가 석촌호수에 익사한 사건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롯데월드가 6일간 무료개방을 선언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이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일견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아주 다른 이야기처럼 여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사고는 안전사고였고, 인재였으며, 놀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들이 다쳤고, 사건의 맥락에 산업재해와 이를 묻으려는 단편적 이벤트가 자리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 사건을 이렇게 요약 및 해석할 수 있게 된 데에 보고 듣고 접하고 겪은 사건들이 함께 작용하는 것 같고,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지금이 너무 낯설어요. 왜냐하면, 이 얘기는 정말 그 당시 말고는 안 했거든요. 근데 왜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이 얘기를 꺼내야 할까요.
오늘은 전태일 열사의 52번째 기일입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던 시절, 평균 15세인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눈을 뜨며 본격적인 노동 운동에 투신합니다. 재단사가 되어 시다들의 어려움을 덜려 했지만, 폐병으로 강제해고당한 여공을 돕다가 해고됩니다. 이후 근로기준법을 독학하며 바보회를 조직했는데, 이마저 소문이 난 뒤 무산되고 맙니다. 이후에는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을 만방에 알리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고 정부에 진정서를 넣기도 합니다. 갖은 노력 끝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대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지요.

저는 전태일이 무엇에 대해 목소리를 냈는지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어떤 맥락에서 왜 거기에 목소리를 냈는지를 생각합니다. 당장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겠죠. 이걸 개선하기 위해 다른 직책도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어떤 구조임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후는 그 구조와의 싸움이었을 것이고, 엄연히 있는 법을 지켜달라고 국가에 항거한 요구마저 거부당한 후, 선택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때 가장 중요한 화두는 말할 것도 없이 노동환경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때 가장 주요하고 시급한 이슈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꼭, 잠수함의 산소가 모자라면 사람보다 먼저 반응하는 토끼 같은 것이 아닐까요.
훑고 훑어서 오늘날에 이릅니다. 그때의 그 문제는 어느 정도는 해결됐지만 또 어느 정도는 안 됐고, 또 더 많은 문제들이 생겼어요. 여기에는 근로기준법의 이행 자체가 문제인 경우도 있고, 근로기준법 자체가 문제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 대통령은 주 120시간 노동 같은 소리를 했지요. 참고로 전태일이 소리 높여 노동환경을 문제삼던 당시 여공의 노동시간은 주 110시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흐른다고 뭔가가 무조건 좋은 쪽으로 흐른다는 의미는 아닌 거죠.
노동시간은 둘째치고, 노동환경만 생각해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일단 노동을 할 수 있느냐부터 문제예요. 쿠팡, 배달의민족 등의 플랫폼 기업이 등장한 이후 이에 대한 매뉴얼은 딱히 정해지지 않은 채 일선의 노동자를 갈아넣는 구조로 이루어지고 있고, 비숙련 노동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데, AI 중심 산업으로 재편되면서 필요한 노동자 수 자체도 줄어드는 추세예요. 일을 구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이런 경향은 업무 경험이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더해요. 그러니까, 노동시장은 점점 ‘프로듀스 101’, ‘슈퍼스타 K’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변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혹은 그렇게 된 후에도, 숱한 산재가 기다리고 있고요. 거기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여전히 갖은 이벤트와 여론전입니다.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또다른 시급한 이슈를 생각합니다. 어렴풋이 들어 온 사건들을 떠올려 봐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인현동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 그리고 10.29 참사. 씨랜드 화재에서 선생님들은 술을 마시느라 화재를 발견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아이들을 챙기지 않고 나가서 유치원생 19명, 인솔교사 및 강사 4명이 숨졌습니다. 인현동 화재 당시 인근 학교에서 축제가 끝난 학생들은 라이브 생맥주집과 당구장으로 몰렸고, 빽빽한 건물 구조와 불법적인 영업, 미성년자 손님을 받아온 사장과 경찰과의 유착으로 인해 미흡했던 초동 대처 등으로 인해 57명이 사망, 79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후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놀다가’ 참사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씨랜드에서는 유치원생들이, 인현동과 세월호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이태원에서는 10-20대 사람들이. 만약 롯데월드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면 이것도 참사 리스트에 추가됐겠죠. 아마 롯데 측에서는 발빠르게 보상금 같은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이래저래 드네요. 아무튼,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노는 것은 죄가 아니며, 그러므로 처벌의 대상도 아니고, 좀 더 참사의 대상이 됨직한 어떤 정당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자꾸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자꾸 그런 식의 ‘피해자 탓’이 등장하곤 합니다.
책임 소재가 명확히 다른 데 있음에도 청소년, 청년의 유희를 탓하는 게 기괴한 만큼이나, 유희 자체를 둘러싼 배경 자체도 기괴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튼 웬만하면 대학에, 그것도 최대한 번듯한 대학에 가는 게 어떤 표준적인 생애주기로 여겨지고 있고, 그걸 위해 어떤 욕망을 거세당한 채 입시에 매달리곤 합니다. 근데, 사실 입학해도 그렇게 놀 수는 없고, 놀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편입될 준비를 해야 해요.
이것도 수도권 혹은 지방 국립 4년제 대학에 해당되는 얘기일 거고, 나머지, 나머지의 나머지에는 또 갖가지 각자도생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런 좁디좁은 정상성의 테두리도 기묘한데, 이걸 그대로 따르면 또 그것대로 기묘해요. 도대체 언제 놀아? 싶은 거죠. 이 시점에 말하자면, 핼러윈은 중간고사 이후, 축제 시기라는 시점도 그렇고, 여러모로 ‘놀기에 좋은’ 시기였어요. 그런가 하면 인현동 사건에서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학교와 집 이외에 놀 만한 곳이 없었고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노동에서의 이슈와 유희에서의 이슈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둘은 정반대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국가 역할의 부재 혹은 직무 유기, 사회 구조상의 병폐 같은 것들이요. 전태일 당시에 국가는 엄연히 있는 근로기준법조차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노조가 조직됐고, 갖은 투쟁 끝에야 그나마 뭔가가 갖춰졌어요. 세월호 사건 때의 민간잠수사 사례나, 이태원 참사 외국인 사망자의 이송을 유명인이 해주는 ‘미담’ 같은 것들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탓에 민간 영역 곳곳에서 이를 벌충해야 했던 현실을 드러냅니다.
청년주관예배이고, 그런 만큼 청년에 관한 얘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노동과 재난 얘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청년에 관한 이야기는 곧 노동과 재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위 ‘어른’이라 여겨지는 이들, 그들의 욕심 때문이든 무엇이든, 어떤 결과로든, 죽거나 다치지 않아도 될 청(소)년이 너무 자주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 역시 그럴 뻔했고, 그런 시간을 거쳐, 이제는 함께 그 원인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소위 말하는 ‘청년 당사자’이자, 어떤 사건과 동시대에 살아 숨쉬던/숨쉬는, 어떻게든 그것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징징대던 것치고는 여러 모로 운이 좋았고, 그 운으로 말미암아 지금 여기서 어떤 분석과 사유를 거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존에 ‘청년’이라는 단어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여러분이 청년이라 여기는 나이대 사람들은, 생각보다 취약하고, 가난하고, 불안하고, 나약하며, 아프고, 더 먼저 죽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생각보다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고, 비겁하며, 반동적이고, 영악하며, 뻔뻔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며, 솔직히 우리도 누가 얼마나 어떤지는 알고 지내봐야 알 수 있어요. 아무래도 노동의 문제가 근로기준법 이행 자체를 넘어 다채롭게 문제되(지 않)듯이, 청년의 문제도 어느 정도는 그런 듯합니다. 소위 ‘이대남’ 현상도 그렇고, 흔히 ‘MZ세대’ 등으로 분류되는 나이대에서도 꽤나 많은 분화가 일어나거든요. 근데, 시스템이든 뭐든 문제가 생기면, 더 먼저, 잘, 많이 다치고 죽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 범주에 소위 말하는 ‘청년’도 포함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 범주, ‘더 먼저, 잘, 많이 다치고 죽는’ 범주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여기에는 청년과 더불어, 여성, 노인, 성소수자, 장애인, 홈리스, 아동이 포함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성노동자 등 범주화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숱한 노동자도 포함되고요. 청년주관예배에서 갑자기 다른 범주를 같이 얘기해서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태일이 당시 발견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급한 이슈로서의 노동환경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하는 이슈가 이토록 많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실은 ‘청년’이라는 단어가 소환하는 모종의 기대, 전제 같은 것들이 연상되면서 불편했던 걸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날 청년이라는 건, 정말이지 비루하기 짝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청년’이라는 범주를 조금 해체하면서도 이를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당사자는 절대 쓰지 않는 ‘MZ 세대’처럼, 이제는 느슨한 범주로서의 의미밖에 남지 않은 ‘청년’을 두고, 그래도 청년 당사자로 불리는 입장에서, 52년 전 오늘의 의미를 기억하고 살리면서 동시에 현재화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네요. 범박하게 요약하자면, 저나 우리는 여러 모로 ‘X됐다’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고, 주변을 보건대 다들 그런 것 같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고, 근데 그렇게 따지면 이런 식으로 생각할 다른 범주도 함께 돌아봄직하지 않나, 뭐 이런 겁니다.
뭔가 결말을 잘 내야 논리정연 일목요연한 말, 글처럼 보일 것 같은데, 꼭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해석되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외침이라면, 오히려 그거야말로 들어야 할 어떤 것일 테니까요. 물론 해석되고 들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