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잡문 혹은 둘 다

221227 일기, 너의 길로 홀로이 가라(하지만?)

탈해 2022. 12. 28. 07:01

https://youtu.be/UFXNwLve6U0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다. 이건 확실히 불합리하다. 분명 자다가 깬 이유야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깨고 나서 그 시간 동안 잠들지 못할 건 아니지 않은가. 내 몸은 입도 귀도 신경다발도 다 제대로 달려 있는 주제에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표현도 못 하고는 나중에, 이를테면 가장 집중력이 필요할 오후 2-4시경에 시위하듯 잠을 쏟아붓는다. 처음부터 왜 잠이 안 오는지 알려주고 그거 해결하고 마저 잤으면 됐잖아, 같은 생각을 한다. 신체의 표현형식에도 회피성 애착유형 그런 게? 있는 걸까요?

근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졸릴 때 잘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사냥감이 될 위험도 없고, 전쟁의 위험도…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튼 그것으로부터의 안전을 담보받기 위해 국가에게 어느정도 폭력성을 용인하고 지내므로 대체로 그런 위험도 없고. 그런데 쓸데없이 근대성 같은 걸 발명하고 내재화하고 우리 삶의 패턴과 루틴을 이루도록 규율권력을 이루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일정한 시간이 아니면 못 자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아무튼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의 루틴 같은 걸 정한다는 건. 잔뜩 돌봄 받으면서 자고 싶을 때 자고 깨어 있을 때 깨어 있는 반려동물처럼, 왜 우리는 살지 못하는지. 생각보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ADHD 주제에 이런 소리를 회사 대표에게 했다가는 이해받지 못하는 걸 넘어서 어떻게 될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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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잠이지만 참. 있는 힘껏 내가 되고, 그런 나-됨을 지키고, 그런 나를 통해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도 일정 부분 이상 휩쓸리거나 함몰되지 않고 끝내 나로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되는 때, 되던 때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크게 방황하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증이 맞고, 뭔가가 되는 듯하던 감각에 이 증상이 기여하기도 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증을 잦아들게 하고, 대체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잔잔히 나-이자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무언가-로 있기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뭔가를 도모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조증 테스트를 하고(하나 빼고 나머지가 YES였다!) 관련된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건 고무적이다.

여하간 그런 나로 있을 때, 내가 나를 온전히 돌볼 수 있을 때 남도 품고 돌볼 수 있게 된다는 건 확실하다. 물론 그런 남에게서 나도 돌봄을 받는다, 받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남과의 돌봄 관계를 실제로 맺고 이를 돌아보기 전까지는 모르는데, ‘굳건한 나’ 같은 걸 세워 놓고는 그런 자신으로만 살다가는 그걸 또 모른다. 그러니까 어떤 오롯한 개인으로 살 만할 때에 선물처럼 오는 타자와 돌봄 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인식하고 곱씹으면서 관계의 지속 가능성, 이를 위해 필요한 것들 같은 것들을 같이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냥 살던대로 개인으로, 생각보다 부족함 없이 살거나, 그러는 것이다.

물론 이건 환상이다.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이는 없고, 그 필요한 돌봄의 성질은 한 가지가 아니며, 그러므로 자기돌봄만으로 스스로를 완성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구축이 있어야 다른 돌봄 관계에서의 안정성을 함께 보장한다는 것, 심지어 그런 관계가 있든 없든 어떤 안정성만은 어떻게든 남는다는 점은 퍽 역설적이다. 길을 걷고, 부딪치고, 미안해하고, 멍이 들고 그걸 모르고. 그런데 또 붉은 십자가의 흐느낌과 어린 소녀의 기도를 뒤로 하고, 모두 버리고 자기만의 길로 홀로이 간다는 어떤 불/가능성(문화연구에서 자주 쓰는 제목 형식).

이러나 저러나 이규호의 이 노래가 나의 굴곡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어떻게든 대화적이라는 점을 강하게 느낀다. 그 대화는 스스로를 형성하는 동시에 타자와의 연결 가능성을 함축한다. 그렇게 연결되든 그렇지 않든 여전히 어찌어찌 맴도는 형태로 무언가가 떠다닌다. 이를 잘 보는 데에서 어떤 돌봄이 형태를 입곤 한다. 당위나 관념이나 바람이나 현실이나 그런 것들이 제각각의 비율로 어우러진다. 여전히 신비한 현상.

자리를 털고 아침으로 나간다. 세상 같은 아침, 매서운, 그러나 밝은 겨울의 잔여로.

* 본 글은 애매하게 일어나버린 수면장애와 ADHD, 조증 등의 후원? 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동의 없이(누구의?) 삭제될 수 있습니다.

 
너의 길로 홀로이 가라
아티스트
이규호 (Kyo)
앨범
SpadeOne
발매일
197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