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2

정우와 김일두, 사랑과 종말에 걸쳐

좋아하는 가수가 다른 이의 노래를 커버해 부를 때 나는 두 곡을 좋아하게 된다. 원곡의 느낌과 커버의 느낌 모두를 놓지 못한 채 상황과 감정에 따라 찾아 듣는다. 그러다 보면 원곡을 부른 가수도 좋아하고 만다. 인디음악은 이렇게 알음알음 알아가는 매력이 있다. 이미 김목인에서 정우로, 정우에서 박소은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근 한 달 반째 정우가 부른 김일두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빠져 있다. 이 곡은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김일두의 2013년 앨범 [곱고 맑은 영혼]수록곡이다. 김일두의 음악과 목소리는 한대수에서 카쥬에 가까운 그 쨍한 소리를 덜어내고, 김민기에서 서정을 덜어내는 대신 처량하고 절절한 감성을 더한 어느 지점에 걸쳐 있다. 동시에 그의 음악은 흐린 날 부산 앞바다와 소주를 연상케..

아카이빙 2022.12.29

고도는 올 것이고, 우리는 갈 것이다

“시간은 멈춰 버렸는걸요.” 교회에 등록하고 얼마 안 되어 연극 모임에 참여했다. 부활절 주간에 올릴 계획으로 사무엘 베케트의 를 읽었다. 학교 수업에서 접한 베케트는 늘 ‘부조리극’이라는 키워드와 엮이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오직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시골길 가운데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고도는 오지 않고, 그 사이에 포조와 럭키가 등장해 한 바탕 놀다가 떠나갈 뿐이다. 그래서 왠지 ‘고도’ 하면 선형적 플롯의 거부, 전통적 시간관념의 해체 같은 말이 더 익숙했고, 그런 전제를 통해 작품을 읽을 때면, 마치 그 특유의 불가해함과 이로 인한 지루함이 ‘고도’ 특유의 속성인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래서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해도 그 의의 때..

아카이빙 202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