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읽고 쓰는 8

한유리의 <불멸의 인절미>와 사랑하고 바라고 쓰는 일

위즈덤하우스api.wisdomhouse.co.kr 언어란 물리적, 사회적 실체로서의 물성을 가진다고 꾸준히 믿는다. 말과 글로 세계를 서술하는 작업은 동시에 그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수행문에 가깝다. 언어로 시공간을 입은 세계는 쓰이고 말해지고 읽히고 들리는 한 기억되며, 믿는 만큼 존속한다. 그러나 얼마나 구체적으로, 단단하게, 그리고 언제까지? 그것은 언어가 끝내 정확히 성취할 수 없는 부분이며, 아무리 확대해도 미세하게 흐릿할 수밖에 없는 어떤 지점이다. 그 흐릿한 잔여에서 소설은 의미생산을 시작한다. 한유리의 는 인절미라는 기니피그에 관한 소설인 동시에 소설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이끄는 동인은 명백하다. 강인하고 아름다우며 오롯한 이 소동물이, 인간과 지구의 시선과 법칙을 ..

예술가로서의 나, 그리고 가족에 대해: 이랑의 노래를 통한 자기서사 탐구

2018년 6월에 열린 한국비교문학회 에서 '자기 서사의 매체 적용 가능성 비교 연구: 영화 와 가수 이랑의 노래 가사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원고 중 이랑의 노래에 관한 부분이다. 지금 보니 어떻게 썼나 싶지만, 뭔가 필요하면 또 쓰겠지. 분석 부분도 재미있었는데 어디 갔는지 찾아봐야 할 듯하다......지금 보면 또 다르게 해석되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여튼 이랑에 대한 첫 본격적인 분석이므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 는 한국의 영화감독 겸 작가 겸 싱어송라이터인 이랑의 2집 앨범 제목이면서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이다. 2016년에 발매된 이 앨범으로 인해 이랑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시상식에서 이랑은 즉..

그래, 그런 게 네 이야기가 될 거야: 대화를 대화하는 이랑의 <대화>

‘이 세계에는 뭔가 중요한 것들이 있을테고, 그건 내 얘기는 아니라는 것은 난 잘 알고 있어.’ 넋두리 같은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랑의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수록곡)는 그 시작이 무색하면서도 제목이 더없이 어울릴 만큼 대화를 논한다. https://youtu.be/Mq516rVg41k 이랑- 노래는 베이스를 이루는 단성적 목소리와 반주를 이루는 다성적 목소리, 그리고 두 개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이는 이미 노래 전체에 드리운 주제-독백적 자아와 대화적 화자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곡은 두 목소리의 주고받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쪽은 대화의 불가능성과 불필요성을 내내 역설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대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말한다. 편의상 두 화자를 A와 B로 두겠다. A는 자신의 ..

혼합, 분리, 애도와 잠에 대해: 정우-<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생물학적, 사회학적 오류로 점철된 정보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읽지 않거나 어릴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읽지만, 생존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헛소리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이에게 꼬박꼬박 주는 것. — 이영도, 중 정우의 는 정규 1집 이후 (, 등에서처럼) 점차 이행하는 그의 음악적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일종의 자장가로 기획된 이 곡은 벌스 이후 긴 나레이션이 이어지고, 브릿지가 나온 뒤에 다시 벌스를 반복하며 끝나는 간단한 구조를 지닌다. 공연 때에는 내레이션 부분에 정우 본인이 임의로 선정한 텍스트를 낭독했는데, 책 속 한 대목(이를테면 , , , 등)을 읽거나 자신이 직접 쓴 메모를 읽곤 했다. 자장가이자 옛날이야기여서인지 중심이 되는 내레이션이 바뀌곤 했는데, 정식 음원에서는 다른 ..

기억, 혹은 기억하는 우리를 기억하기: 정우-<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

2021년 4월 16일, 정우는 닷페이스와 4.16재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작업한 곡 를 발표한다. 아래 썸네일의 노란 리본이나 발표한 날짜, 함께한 재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곡은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한 노래이다. 하지만 이 곡에 흐르는 정서는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여느 노래와 조금 다르게 흐른다. 그리고 그 다름은 곡에 메타적인 층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곡만이 지닐 수 있는 풍성함을 드러낸다. https://youtu.be/2ZLSLLDjI-w 정우, 노래는 역설로 시작한다. 첫줄인 ‘밥 잘 챙겨 먹고 이불 속에 숨어있어’는 이미 그 안에 아이러니한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밥을 잘 챙겨 먹었다는, 어떤 규칙적이고도 건실한 생활의 표지는 이내 이불 속에 숨어 ‘있다’는 지속..

머문 어제를 딛고 당신과 마주할 내일: 정우-<여섯 번째 토요일>과 <뭐든 될 수 있을거야>

정우 오디세이 (2) -과 나 못다 한 안녕 https://www.youtube.com/watch?v=75tay629QyQ [온스테이지2.0] 정우, 은 단적으로 말해, '과거들에 못박힌' 채 낙엽처럼 지는 몰락 속에 머무르는 이야기이다. 이 곡에서 대체로 내일이나 미래란 존재하지 않으며, 고집스러울만치 어제 혹은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는 가사가 주로 과거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일례로 곡의 첫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당신'은 안경을 두고 '갔고', '나'는 작별을 채 건네지 '못했다'. '당신'이 '밝혀 둔' 등불에 '나'는 숱한 인사를 '헤아렸다'. 이후의 가사 역시 대부분 '-ㄴ'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에 그 시선이 머물러 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속삭이는 시놉시스를 보면..

안에서 밖으로, 다채로운 우리의 한때: 정우-[여섯 번째 토요일]과 <나에게서 당신에게>

정우 오디세이 (1) - [여섯 번째 토요일]과 돌아가,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날의 밤 [여섯 번째 토요일]은 정우가 씨티알싸운드에 들어간 이후 발표한 첫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가 처음 곡을 만들고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그 시점까지의 한 부분이 담겨 있다. 그때까지의 곡들을 그러모아 낸 만큼, 일견 앨범 자체에는 커다란 유기성이나 흐름이 없는듯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섯 번째 토요일]에 오롯이 담긴 하나의 커다란 시기는 곧 그만큼의 계기를 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 앨범의 전반적인 기조는 '과거의 연장'을 그린다. 수록곡의 가사는 다채롭지만, 대부분 과거 어느 순간에 시선이 머물러 있거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박제된 채로 지속되는 형태를 보인다...

이야기, 혹은 이야기 앞의 우리: 안예은의 <섬으로>와 <섬에서>

안예은의 앨범 와 는 그의 음악적 역량 외에도 스토리텔링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말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잘 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야기의 뼈대와 관절을 잘 잡아내고, 행위자로서의 인물을 배치하며, 이 모든 과정이 기호들의 직조임을 메타적으로 능숙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앨범은 함께 들을 때 그 ‘이야기성’이 뚜렷이 드러나고, 그 '이야기성'은 곧 기호, 이야기에서의 죽음과 이를 받아들이는 윤리적 질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의 ‘프롤로그’는 두 앨범을 여는 음악적 프롤로그이면서도 다음 곡인 ‘가자’의 주제로 천천히 이끈다. ‘가자’는 개구리가 눈을 뜨는 봄의 한복판에서 ‘가자’라는 청유형과 ‘봄이 오는구나’라는 서술로 배경과 동기를 설정한다. 배경과 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