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 13

예술가로서의 나, 그리고 가족에 대해: 이랑의 노래를 통한 자기서사 탐구

2018년 6월에 열린 한국비교문학회 에서 '자기 서사의 매체 적용 가능성 비교 연구: 영화 와 가수 이랑의 노래 가사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원고 중 이랑의 노래에 관한 부분이다. 지금 보니 어떻게 썼나 싶지만, 뭔가 필요하면 또 쓰겠지. 분석 부분도 재미있었는데 어디 갔는지 찾아봐야 할 듯하다......지금 보면 또 다르게 해석되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여튼 이랑에 대한 첫 본격적인 분석이므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 는 한국의 영화감독 겸 작가 겸 싱어송라이터인 이랑의 2집 앨범 제목이면서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이다. 2016년에 발매된 이 앨범으로 인해 이랑은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시상식에서 이랑은 즉..

그래, 그런 게 네 이야기가 될 거야: 대화를 대화하는 이랑의 <대화>

‘이 세계에는 뭔가 중요한 것들이 있을테고, 그건 내 얘기는 아니라는 것은 난 잘 알고 있어.’ 넋두리 같은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랑의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수록곡)는 그 시작이 무색하면서도 제목이 더없이 어울릴 만큼 대화를 논한다. https://youtu.be/Mq516rVg41k 이랑- 노래는 베이스를 이루는 단성적 목소리와 반주를 이루는 다성적 목소리, 그리고 두 개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이는 이미 노래 전체에 드리운 주제-독백적 자아와 대화적 화자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곡은 두 목소리의 주고받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쪽은 대화의 불가능성과 불필요성을 내내 역설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대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말한다. 편의상 두 화자를 A와 B로 두겠다. A는 자신의 ..

혼합, 분리, 애도와 잠에 대해: 정우-<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생물학적, 사회학적 오류로 점철된 정보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읽지 않거나 어릴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읽지만, 생존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헛소리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이에게 꼬박꼬박 주는 것. — 이영도, 중 정우의 는 정규 1집 이후 (, 등에서처럼) 점차 이행하는 그의 음악적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일종의 자장가로 기획된 이 곡은 벌스 이후 긴 나레이션이 이어지고, 브릿지가 나온 뒤에 다시 벌스를 반복하며 끝나는 간단한 구조를 지닌다. 공연 때에는 내레이션 부분에 정우 본인이 임의로 선정한 텍스트를 낭독했는데, 책 속 한 대목(이를테면 , , , 등)을 읽거나 자신이 직접 쓴 메모를 읽곤 했다. 자장가이자 옛날이야기여서인지 중심이 되는 내레이션이 바뀌곤 했는데, 정식 음원에서는 다른 ..

기억, 혹은 기억하는 우리를 기억하기: 정우-<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

2021년 4월 16일, 정우는 닷페이스와 4.16재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작업한 곡 를 발표한다. 아래 썸네일의 노란 리본이나 발표한 날짜, 함께한 재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곡은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한 노래이다. 하지만 이 곡에 흐르는 정서는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여느 노래와 조금 다르게 흐른다. 그리고 그 다름은 곡에 메타적인 층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곡만이 지닐 수 있는 풍성함을 드러낸다. https://youtu.be/2ZLSLLDjI-w 정우, 노래는 역설로 시작한다. 첫줄인 ‘밥 잘 챙겨 먹고 이불 속에 숨어있어’는 이미 그 안에 아이러니한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밥을 잘 챙겨 먹었다는, 어떤 규칙적이고도 건실한 생활의 표지는 이내 이불 속에 숨어 ‘있다’는 지속..

머문 어제를 딛고 당신과 마주할 내일: 정우-<여섯 번째 토요일>과 <뭐든 될 수 있을거야>

정우 오디세이 (2) -과 나 못다 한 안녕 https://www.youtube.com/watch?v=75tay629QyQ [온스테이지2.0] 정우, 은 단적으로 말해, '과거들에 못박힌' 채 낙엽처럼 지는 몰락 속에 머무르는 이야기이다. 이 곡에서 대체로 내일이나 미래란 존재하지 않으며, 고집스러울만치 어제 혹은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는 가사가 주로 과거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일례로 곡의 첫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당신'은 안경을 두고 '갔고', '나'는 작별을 채 건네지 '못했다'. '당신'이 '밝혀 둔' 등불에 '나'는 숱한 인사를 '헤아렸다'. 이후의 가사 역시 대부분 '-ㄴ'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에 그 시선이 머물러 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속삭이는 시놉시스를 보면..

안에서 밖으로, 다채로운 우리의 한때: 정우-[여섯 번째 토요일]과 <나에게서 당신에게>

정우 오디세이 (1) - [여섯 번째 토요일]과 돌아가,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날의 밤 [여섯 번째 토요일]은 정우가 씨티알싸운드에 들어간 이후 발표한 첫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가 처음 곡을 만들고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그 시점까지의 한 부분이 담겨 있다. 그때까지의 곡들을 그러모아 낸 만큼, 일견 앨범 자체에는 커다란 유기성이나 흐름이 없는듯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섯 번째 토요일]에 오롯이 담긴 하나의 커다란 시기는 곧 그만큼의 계기를 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 앨범의 전반적인 기조는 '과거의 연장'을 그린다. 수록곡의 가사는 다채롭지만, 대부분 과거 어느 순간에 시선이 머물러 있거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박제된 채로 지속되는 형태를 보인다...

가난한 내 친구들과 부르는 혁명: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의 정규 3집 는 충격적인 앨범이다(사실 그의 앨범이 충격적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여러 공연과 선공개곡으로 이미 알던 곡을 포함해도 이 감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곡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의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각 곡들에 즐기고 비평할 거리가 넘쳐난다. 그 중에서도 타이틀곡인 [늑대가 나타났다]에서 이를 가장 강렬하게 느꼈으므로, 우선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https://youtu.be/s4TqBnVNriU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낯섦. [늑대가 나타났다]의 첫인상이다. 익숙한 음계나 연주와 동떨어져 귀를 잡아끄는 첼로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

아카이빙 2022.12.30

정밀아, 서울역에서 출발

이태원과 파사주 이태원을 제대로 둘러본 건 작년 이맘때였다. 한적한 주말, 홍제동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자전거도 타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신 참이었다. 이태원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는 친구를 무작정 따라 talhae.tistory.com 여기에 처음 쓴 글에서 나는 이태원을 처음으로 제대로 걸어보았을 때 느꼈던 초라함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태원로나 보광로 같은 큰길을 제외하면 이태원 일대 지형은 대부분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다. 그 분위기도 마냥 번쩍이지만은 않고 오히려 오랜 시간의 궤적이 군데군데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주눅이 들어 있었는지 다소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실은 알 것도 같은데, 이전까지 내가 알던 이태원은 내 동기들과 주한미군들이 주기적으로 순찰하던 ..

아카이빙 2022.12.29

생각의, 여름이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유머 중에 소위 ‘여름이었다 드립’이 있다. 대충 아무 말이나 써 놓고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어쩐지 청춘 로맨스물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이는 이 유머는 의외로 정말 잘 어울리곤 했다. 이를테면 ‘저녁밥은 간단하게 라면에 김 싸서 먹었다’ 같은 문장은 어쩐지 구질구질한 자취생의 누추한 일상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뒤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는 순간, 해가 채 지지 않고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가운데 저 멀리 어디선가 쨍하지만 나지막이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따라 산책이라도 나서는 듯한 풍경이 떠오른다. 아닌 것 같아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 여름은 밑도 끝도 없이 강렬하고 푸르고 평화로운 나날로 상상되었고, 그 상상에 자주 배반당하면서도 결국 몇 안 ..

아카이빙 2022.12.29

정우와 김일두, 사랑과 종말에 걸쳐

좋아하는 가수가 다른 이의 노래를 커버해 부를 때 나는 두 곡을 좋아하게 된다. 원곡의 느낌과 커버의 느낌 모두를 놓지 못한 채 상황과 감정에 따라 찾아 듣는다. 그러다 보면 원곡을 부른 가수도 좋아하고 만다. 인디음악은 이렇게 알음알음 알아가는 매력이 있다. 이미 김목인에서 정우로, 정우에서 박소은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근 한 달 반째 정우가 부른 김일두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빠져 있다. 이 곡은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김일두의 2013년 앨범 [곱고 맑은 영혼]수록곡이다. 김일두의 음악과 목소리는 한대수에서 카쥬에 가까운 그 쨍한 소리를 덜어내고, 김민기에서 서정을 덜어내는 대신 처량하고 절절한 감성을 더한 어느 지점에 걸쳐 있다. 동시에 그의 음악은 흐린 날 부산 앞바다와 소주를 연상케..

아카이빙 202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