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6

혼합, 분리, 애도와 잠에 대해: 정우-<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생물학적, 사회학적 오류로 점철된 정보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읽지 않거나 어릴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읽지만, 생존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헛소리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이에게 꼬박꼬박 주는 것. — 이영도, 중 정우의 는 정규 1집 이후 (, 등에서처럼) 점차 이행하는 그의 음악적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일종의 자장가로 기획된 이 곡은 벌스 이후 긴 나레이션이 이어지고, 브릿지가 나온 뒤에 다시 벌스를 반복하며 끝나는 간단한 구조를 지닌다. 공연 때에는 내레이션 부분에 정우 본인이 임의로 선정한 텍스트를 낭독했는데, 책 속 한 대목(이를테면 , , , 등)을 읽거나 자신이 직접 쓴 메모를 읽곤 했다. 자장가이자 옛날이야기여서인지 중심이 되는 내레이션이 바뀌곤 했는데, 정식 음원에서는 다른 ..

기억, 혹은 기억하는 우리를 기억하기: 정우-<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

2021년 4월 16일, 정우는 닷페이스와 4.16재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작업한 곡 를 발표한다. 아래 썸네일의 노란 리본이나 발표한 날짜, 함께한 재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곡은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한 노래이다. 하지만 이 곡에 흐르는 정서는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여느 노래와 조금 다르게 흐른다. 그리고 그 다름은 곡에 메타적인 층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곡만이 지닐 수 있는 풍성함을 드러낸다. https://youtu.be/2ZLSLLDjI-w 정우, 노래는 역설로 시작한다. 첫줄인 ‘밥 잘 챙겨 먹고 이불 속에 숨어있어’는 이미 그 안에 아이러니한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밥을 잘 챙겨 먹었다는, 어떤 규칙적이고도 건실한 생활의 표지는 이내 이불 속에 숨어 ‘있다’는 지속..

머문 어제를 딛고 당신과 마주할 내일: 정우-<여섯 번째 토요일>과 <뭐든 될 수 있을거야>

정우 오디세이 (2) -과 나 못다 한 안녕 https://www.youtube.com/watch?v=75tay629QyQ [온스테이지2.0] 정우, 은 단적으로 말해, '과거들에 못박힌' 채 낙엽처럼 지는 몰락 속에 머무르는 이야기이다. 이 곡에서 대체로 내일이나 미래란 존재하지 않으며, 고집스러울만치 어제 혹은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는 가사가 주로 과거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일례로 곡의 첫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당신'은 안경을 두고 '갔고', '나'는 작별을 채 건네지 '못했다'. '당신'이 '밝혀 둔' 등불에 '나'는 숱한 인사를 '헤아렸다'. 이후의 가사 역시 대부분 '-ㄴ'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에 그 시선이 머물러 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속삭이는 시놉시스를 보면..

안에서 밖으로, 다채로운 우리의 한때: 정우-[여섯 번째 토요일]과 <나에게서 당신에게>

정우 오디세이 (1) - [여섯 번째 토요일]과 돌아가, 사랑을 주고받았던 그날의 밤 [여섯 번째 토요일]은 정우가 씨티알싸운드에 들어간 이후 발표한 첫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은 그가 처음 곡을 만들고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그 시점까지의 한 부분이 담겨 있다. 그때까지의 곡들을 그러모아 낸 만큼, 일견 앨범 자체에는 커다란 유기성이나 흐름이 없는듯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섯 번째 토요일]에 오롯이 담긴 하나의 커다란 시기는 곧 그만큼의 계기를 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 앨범의 전반적인 기조는 '과거의 연장'을 그린다. 수록곡의 가사는 다채롭지만, 대부분 과거 어느 순간에 시선이 머물러 있거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박제된 채로 지속되는 형태를 보인다...

정우와 김일두, 사랑과 종말에 걸쳐

좋아하는 가수가 다른 이의 노래를 커버해 부를 때 나는 두 곡을 좋아하게 된다. 원곡의 느낌과 커버의 느낌 모두를 놓지 못한 채 상황과 감정에 따라 찾아 듣는다. 그러다 보면 원곡을 부른 가수도 좋아하고 만다. 인디음악은 이렇게 알음알음 알아가는 매력이 있다. 이미 김목인에서 정우로, 정우에서 박소은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근 한 달 반째 정우가 부른 김일두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빠져 있다. 이 곡은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김일두의 2013년 앨범 [곱고 맑은 영혼]수록곡이다. 김일두의 음악과 목소리는 한대수에서 카쥬에 가까운 그 쨍한 소리를 덜어내고, 김민기에서 서정을 덜어내는 대신 처량하고 절절한 감성을 더한 어느 지점에 걸쳐 있다. 동시에 그의 음악은 흐린 날 부산 앞바다와 소주를 연상케..

아카이빙 2022.12.29

정우, 나에게서 당신에게

4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김목인의 공연을 보려다가 매진으로 인해 못 가게 되었고, 아쉬운 대로 그가 공연한 공간을 한 번 가본 뒤 마음에 들어 종종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거기서 정우의 공연을 처음 보았다. 이후 정우의 공연을 찾아다니다가 함께 공연하는 박소은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김목인과 박소은을 거친 이제서야 정우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이전에 말했듯 김목인의 노래는 늘 잔잔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고, 박소은의 노래는 그 강렬한 솔직함으로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다. 반면, 정우의 노래는 무엇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날 해방촌에서, 리허설부터 기타 소리와 목소리와 가사로 나를 사로잡은 그때로부터, 숱한 공연과 팟캐스트 방송과 정규 1집 발매에 이르기까지 줄곧..

아카이빙 202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