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잡문 혹은 둘 다

230117 일기, 루틴 중기, 전사(前史), 그리고 전망

탈해 2023. 1. 17. 06:11

간헐적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 같다. 잠이 안 오는 건 아닌데(잠은 어떤 때보다 일찍, 자주, 잘 온다) 오래 못 잔다. 깨고 나면 묘하게 괜찮으니 문제의식을 잘 못 느낀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서서 졸다가 휙 스러질 뻔하고는 놀라는 거지. 잠들고 깨는 시간과 새벽 운동의 루틴을 정하고부터 이는 좀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잠들면 4시반-5시 사이에 깬다. 몸에 근육이 붙어서 눈이 잘 떠지고 제 적정 수면시간이 줄어든 걸까요?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엔 종종 대낮에 피곤해지기도 하고 운동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며, 지금의 수면시간이 간수치와 근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면 뭘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전에 받은 마그네슘과 칼슘을 꾸준히 자기 전에 챙겨 먹어서인지 잠은 깊게 잔다만, 마치 잘 돌아갈 리가 없는데, 그래선 안 될 것 같은데 잘 돌아가는 기계를 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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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루틴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키는 건 6시 반 헬스, 출근 전 도시락 싸기, 퇴근 후 밥 지어먹고 논문 관련 글 읽기 정도. 만성적인 주의집중 분산과 지리멸렬함을 품고 사는데 이게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일단은 새해 결심 후 3주째 지켜지고 있다. 실은 아주 자주 생각해 온 주제다. 어른 되기, 철 들기,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것, 나만의 생활 구축하기(꼭 '구축'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다). 이런 욕망은 터울이 큰 혈육 둘 아래 '화목하다'라고 여겨진, 안온다정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그러나 그것이 마냥 좋은가?)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가정의 막내로 자라면서 줄곧 품고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지만 어째 껍데기가 단단하고 탄탄하게 오래 가는 기분. 그렇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 물론 그 단단함이 나를 덜 미치게 해온 것도 있지만 풍선의 한 부분을 누르듯 다른 미침을 발현하게 한 건지도 모른다.

 

이 생각을 가장 크게 한 건 29살 때였다. 수료는 다가오는데 논문 주제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휴학을 했고, 그래도 여전히 마뜩잖게 살곤 했다. 5월의 어느 밤에는 보이비의 <Night Vibe>를 들으며 숨죽여 울었다. 다음날 나는 [시선의 힘]의 첫 원고를 써서 냈고, 이후 몇 달간 거짓말처럼 강렬한 루틴이 생겼다. 클라이밍을 두 시간씩 했고, 그러고도 자전거를 한 시간은 탔으며, 한 끼+서브웨이 하나로 남은 하루를 보내며 읽고 또 읽었다. 지도교수와의 연락도 이때 이루어졌다. 정말이지 뭔가가 되는 기분이었고, 그건 아마 기분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튼 뭔가를 꾸준하고 진하게 하는 경험은 좋은 선례로 남아 비참한 악순환을 빠져나갈 동기를 준다. 무한히 상승 또는 하강하는 에셔의 계단을 과감히 빠져나온 어떤 사례.

 

2022.12.26 - [아카이빙] - 이태원과 파사주

 

이태원과 파사주

이태원을 제대로 둘러본 건 작년 이맘때였다. 한적한 주말, 홍제동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자전거도 타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신 참이었다. 이태원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는 친구를 무작정 따라

talhae.tistory.com

 

거두절미하고 그런 루틴은 가을과 겨울 즈음에 무너졌다. 돈을 벌어야 했고, 어영부영 마친 수료 이후에는 무기한 휴학 상태로 일자리를 구했다. 이래저래 소란스러웠던 해의 막바지, 늘 오가던 역의 기나긴 환승길을 지나며 30대가 되는 감각에 집중했다. 가능성을 차분히 닫는 섭리 앞에서 내가 무엇이 될지,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때 다시금 생활이니 나 자신이니 하는 것들을 단단히 다지자는 다짐을 되새겼다. 우습게도 그렇게까지 나를 추동한 건, 내가 노잼인간이 되어버리는 데에 대한 걱정이었다. 당시 (그리고 어쩌면 요새도 간혹) 나는 일종의 FOMO(Fearing Of Missing Out)를 앓고 있었고, 신체의 노화와 각종 둔화는 자연스럽게 나를 밈(이걸 뭔가 재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듯하다)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며, 그러면 나는 영락없이 재미없는 중노년의 어떤 것인 상태로, 뚜껑 열린 물티슈처럼 서서히 말라붙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러나 모든 어른이 노잼꼰대쉰내로 여겨지진 않으며, 기품과 존경, 존중의 대상이 되는 이는 반드시 있다. 그게 뭘까를 생각했고, 그 결론으로 나온 것이 상술한 나만의 세계니 고유한 무엇이니 하는 것의 구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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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요즘의 일상은 이전에 크고 작게 경험하거나 생각해 온 것들의 또다른 변주다. 마침내 일자리에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아마도, 부디), 지도교수님에게 신년 인사 겸 메일을 보냈다. 휴학은 할 만큼 해서 일정 금액을 내고 연구등록생으로 등록해야 하고,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한편 나는 비교적 건강한 몸을 물려받아서 생각보다 근육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잘 붙고, 소위 '남자 몸' 같은 것이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만들어진다(그걸 내가 원하는가, 얼마나 원하는가와는 별개로). 아무튼 근육 어쩌구는 건강에 좋고 중요하고, 이제는 그런 걸 신경써야 할 시기인 것도 맞다. 밖에서 남이 해준 밥을 조금 더 얹어주고 먹는 것도 좋지만, 돈은 더 소중하고 중요한 데에 쓰기로 하고 일단은 의식주 중 식이라도 외주 주지 않고 해내 본다(밥 짓는 일에 담긴 돌봄과 애정 등의 가치와 질감, 소중한 기억은 엄청나다). 이제는 트위터도 안 하고, 아무튼 말을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읽고 듣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지는 일에 집중한다.

 

트위터를 안 하니 정말로 노잼인간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불쑥 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난 줄곧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이를 증명할 글과 증인들도 여럿 있다. 재미와 말장난, 농담에 대한 추구는 박민규, 이영도, 조나단 스위프트, 세르반테스, 테리 이글턴, 커트 보니것 등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것들의 궤적에 남아 있다. 그러면 트위터 안 한다고 노잼인간이 될 거라는 두려움은, 위에서 쓴 '밈에서 멀어지면 재미없어진다'라는 어떤 것의 변주에 불과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노잼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줄어든다. 상담 선생님은 내 불안과 걱정의 내용을 쓰고 이를 논박해서 무력화하라고 조언해줬다. 써놓고 보니 이거구나 싶다.

 

명절에는 가족들을 만나서 운전을 좀 배워 볼까 생각한다. 이전에는 관심 두지 않던 것들, 그러니까 운동이나 활동적 가치의 실현을 이유인지 변명인지로 두고 미뤄 왔던 것들에 다시 눈을 돌린다. 여하간 마주해야 할 것들이 있고, 하면 좋은 것들, 해서 나쁘지 않을 것들이 있다. 중요도와 가치가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다. 내가 가진 자원과 여기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얼추 알고 있다. 한편으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이루어지는 어떤 몰락의 작디작은 전조를 인지한다. 푸른 도화선 속 꽃을 몰아가는 힘. 그리고 이에 따라 그대로 두면 감가상각이 되어버릴 자원을 운용하는 일을 생각한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보면 정말로 중반이구나 싶다. 이런 것들의 목록을 정하고 실현한다고 칭호 달성하듯 어른이 되는 건 아닐 테다. 하지만 기여는 하겠지. 그리고 '어른-됨' 같은 것들은 여전히 어떤 총체로서 자리할 것이다. 거리와 틈, 침묵에 따른 불안과 공허는 이 지구가 진공이 아닌 것만큼이나 늘 있을 테고, 여기에 휩싸이면 언제든 칭얼거려 버리겠지. 나는 불쑥 내가 철이 들고 어른이 됐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살겠지, 머리를 잠깐 내고 담그는 수영처럼.

 

p. s. 다 쓰니까 알람이 울린다. 유산균을 먹고 물을 마시고 이를 닦고, 운동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