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과 잠깐 대화했다. 예심 때 지적받은 목차-혹은 범주, 유형-에 대해 수정 보완하기로 했다. 학식을 먹고 도서관에서 <소설 속의 담론>을 읽었다. 그래봐야 2-3시간 남짓인데 그마저도 살짝 졸았다. 너무 아까워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조금 더 이어서 읽었다. 3, 4, 5장을 복습해보라는 심사위원님의 말을 떠올렸고, 예심의 분위기를 다시금 떠올렸다. 소설성으로 <돈키호테>를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통해 다시금 소설의 생성 및 발전 도상을 규명한다는, 상호 참조 같은 이 기획은 볼 때마다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이게 정말 돼요?" 싶은데, 또 아주 안 되는 건 아니어서 매번 신기하다. 그런데 예심 때 심사위원님이 충분히 이런 기획에 대해 동의한다고 하셔서 조금은 확신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혹은 다른 모든 것들까지 확신을 가진 건 아니지만.
조금만 애매한 저녁-밤 시간에 집에 도착하면 적게라도 뭔가를 먹거나 마시곤 했다. 이제는 그러면 안될 것 같고, 또 그러기 싫어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산책을 나갔다. 시크릿가든이나 사공 같은, 대충 자연...연주곡...뭐랄까 <걸어서 세계속으로>나 무인양품에서 나올 것 같은 음악을 경쾌하게 들으면서 살짝 뛰다 걷다 했다. 공기는 제법 시원했고, 무엇보다 미세먼지가 별로 없었다. 이제는 정말 자전거를 탈 때구나, 뭔가 반쯤은 피할 수 없다는 마음, 반쯤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집으로 오면서 읽은 것들을 떠올리며 논문 생각을 하려 했는데, 두 텍스트를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더 들지 않았고, 이런저런 다른 생각만 계속 들었다. 이를테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하다가도, 결국은 박사 과정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알고도 너무나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 그러기 위해 또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 근데 읽고 쓰는 걸로 돈 많이 벌긴 힘든데ㅋㅋㅋ하는 생각 등등.
이외에도 사회적, 인격적, 생물학적 등등 다양한 ~~적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마주침과 즉흥이 주는 충동적 즐거움과 거기서 오는 뜻밖의 성취 혹은 부침으로 용케 살아 왔다. 토르처럼 벼락은 쳤으나, 늘 망치는 건 아니었다. 근데 이제는 점점 뭐랄까, 루틴에 맞추고, 오래 꾸준히 공들여 갈고닦고, 관리하고, 견인하고, 준비하면서 해나가야 할 일이 많아지는 듯하다. 이전의 삶을 지속하기에는 이제는 젠더도 정신도 아프고 몸도 좀 아프고, 그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다방면 아픔이의 아픔을 세상은 아무튼 별로 알아주진 않는다. 시곗바늘이 달리면 거기에 매달리든 어쩌든 해서 얼레벌레 모던타임즈를 살아야 한다. 아프다고 아픔을 아파하면서 아픈 채 있으면 그냥 아픈 채 있는 거고, 아무튼 뇌에 힘주고 뭔가 하(지 않)면서 나아가면 그래도 뭐라도 하겠지. 뇌에 힘주는건 솔직히 좀 너무 자기계발 서사 같고, 적어도 악착같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감싸고 자기돌봄 하면서 견인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아픔의 빈익빈 부익부 앞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금개님의 주말일기 팟캐스트에서 <보잭 홀스맨> 얘기하던 게 생각나는데, '다리를 불태우는' 법칙을 주인공인 보잭은 따르지 않더라는 게 요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국면을 넘기네 뭘 어쩌네 아무튼 발버둥! 을 치네! 해도, 어떤 순간에 다시 돌아가버리진 않을까. 그것도 그럴 것이 인생은 너무 길고 길어서 이 기나긴 기나김은 이를테면 중도하차한 소년만화처럼 '최종보스를 향해 나아갈거야!' 하고 끝낸다고 끝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새로운 관성을 구축하는 건 이를테면 산데비스탄...아니 아무튼 척추를 갈아끼우는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몇 년 전 이맘때 그게 되긴 했는데, 몇개월간 진짜 슈퍼휴먼으로 살다가 대번에 고꾸라지고 밤낮없는 알중으로 살아버렸지 뭔가.
<보잭 홀스맨>과 자기만의 병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려 하는데 내가 자기만의 병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설명하려 한다. 최근 참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느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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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제는 뭔가가 됐던 과거와 함께 거기에 대한 실패까지 기억하고 있는 셈인데, 실은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부침도 굳이 기억하고 의미화하자면 끄집어낼 수는 있다. 근데 이렇게 끄집어내자면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이를테면 플롯의 변경 기점은 생각보다 자의적으로 설정해서 해석할 수 있고, 또 삶은 결국 플롯의 바깥에 위치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꾸준함의 꾸준함(의 꾸준함?) 같은게 필요하리라 생각하면 아득해지고, 근데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은 게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너무 부담을 주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고 멋대로 신나서 합리화와 조증삽화의 파티에 중독되지 않아야겠지? 하는 초자아같은 생각도 들고. 과도한 메타인지는 병이기 때문에 대충 생각을 여기서 멈추고 씻고 읽던 텍스트를 조금 더 읽고 자야 하지 않겠나 싶고.
아무튼 좋은 뭐시기를 하기로 선택하기, 그러기로 결심하고 나아가기를 포기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고, 아득함이나 헛헛함이나 이런저런 것들에 가끔 압도당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무너져버리진 않는 걸로. 믿거나 믿고 싶거나 믿어 낸다거나 그런 거창한 수사도 필요하다면 써가면서 살아보는 걸로. 암튼 얼레벌레 비틀비틀 짝짜꿍이다!! 생각난 김에 아래에 링크 걸고 진짜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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