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역사적 차원에서 내용과 형식을 아우르는 비평, 혹은 소설의 담론 분석에 대해 계속해서 읽고 있다. 한편으로는 변증법적이거나 맑스주의적이고, 한편으로는 형식주의의 빚을 지고 있는 듯하지만, 바흐친의 텍스트는 둘을 살짝 스치거나 빗겨 가면서 자신만의 주장을 빚는다. 이제까지의 분석 틀이 사회적, 역사적 필요에 따라 누군가가 당대의 체계로서 정해놓은 무엇이라면, 구체적인 언설은 그 체계와 체계의 경계를 뒤흔드는 언어적 다양성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협상과 긴장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시적 담론과 소설적 담론을 비교하기 직전, 결국 어딘가를 향하며 타자를 통과해 스펙트럼처럼 퍼지는 ’말‘과 대화적 독백에 관해 논하는 데까지 읽었다.
바흐친의 글 덩어리들은 제각기 정합성이 있으며 전체를 모아서 봐도 그렇다. 다만 그것들의 이음새 자체는 다소 성긴 느낌이 있어, 실질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이에 대한 접합이 요구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대화적 담론, 크로노토프, 다설성 같은 개념들이 구체적인 작품-들의 비평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과정에서 ’탁월함‘을 판단할 수 있는지, 애초에 ’탁월함‘을 추려 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 ’탁월함‘은 무엇인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읽을 텍스트가 어려워 페이지가 늦게 넘어간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후루룩 넘어가는 데에 비해 얻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걸 빨리 ’읽어-내고‘ 이를 토대로 뭐라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 조바심이 텍스트 읽기에도 스며들면 금방 지워질 밑줄만 주마간산으로 쳐 버리는 격이 된다. 이러나저러나, 기한은 얼추 정해져 있고, 나는 시기에 맞추어 해야 할 일이 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되 늘어져 있지 않도록 적절한 마음의 거리 설정이 필요하다.
K는 인문계에서 학문을 한다는 일이 정신병 오기 딱 좋은 일이라고 했다. 계속 읽어야 하고, 머리와 눈만 쓰고, 그러다가는 다른 감각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환기와 돌아봄이 없다면 (딴에는 정합적이라 여겨지지만 실은) 자기고립에 가까운 독백만 빚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고, 또 다른 차원의 메타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읽는 나와, 읽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나, 그리고 읽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내가 스스로에 빠져 돌아버리지 않도록 지켜보는 나. 이런 내적 균형은 곧 신체적, 사회적인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묘하게 바흐친의 대화적 담론과 이어지는 내용이어서 신기했다. 아닌가, 이런 게 억지 섞인 독백인가, 여튼.
하다못해 독백조차 대화적 독백인데, 어쩌면 나는 내 안의 독백은 물론이고 그것과 타인의 시선을 바라는 어떤 욕망 사이도 화해하지 못한 것 같다. 뭐 못하고 못할 것이고 하는 자조적인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이제는 그런 것들을 좀 담담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하필이면 다른 많은 이론 중 대화주의를 읽고 있지만 여전히 대화에는 서툴다. 그러고 보면 여전히 이야기와 서사를 잘 몰라서 그렇게 서사학에 천착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단단한 텍스트 안에, 그 공시적인 랑그의 세계 안에 있는 것이고, 실제의 나는 어땠나 어떤가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자문이 또다시 폐쇄적인 독백에 그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제 여기서 한번 더 메타인지를 거치는 순간 별 이득도 효과도 없이 정신병만 키우는 꼴이겠다. 그러니 대충 여기까지.
논문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읽고 싶은 책은 계속 생긴다. 최근 책을 잘 추천하는 분을 알게 되어 매번 기꺼이 영업당한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 자주, 많이 사지? 싶지만 놀랍게도 매번 후회는 없었다. 오늘은 그간 못 산 리베카 솔닛의 책 한 권과 소설책을 샀다. 그 책에서 영문학을 거대한 저택에 비유하는 대목이나, 아일랜드 대기근으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기억의 연결 같은 대목이 참 좋았는데, 빨리 읽고 싶다. 읽어야 하는 것을 읽는 시간 외에, 언제 어떻게 읽으면 되겠다는 계획이 얼추 그려진다. 어찌저찌 다시 읽고 쓰는 사람이 됐구나 싶고, 멈추지 않아야 할 동력이나 재미 같은 것들이 다시금 생긴다. 이 모든 것들이, 점차 포근해지는 날씨에 따른 경조증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런 증상을 거치지 않아도 마침내는 평안에 머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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