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영향에 대한 불안‘이란 주장을 통해 후배 시인이 어떻게 선배 시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시인’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후배 시인은 선배 시인에게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느끼며, 그를 뛰어넘고 싶어한다. 그런 과정에서 선배 시인에 대한 오독을 꾀하고, 이런 방향전환을 통해 후배 시인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이론은 이후 산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에 의해 비판받는다. 그들은 여성 작가의 경우 그런 불안을 느낄 만한 ‘선배 시인’ 자체가 없으며, 다름아닌 이 사실이야말로 여성 작가들로 하여금 다른 방식으로 ‘영향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처럼, 대체로 남성에서 남성으로 이어진 문학사에서 여성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메리 셸리나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같은 이름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에는 그들의 탁월성만큼이나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함께 작용하곤 한다. 남성투성이의 문학사에서 기입된 여성의 존재란 이만큼이나 귀하고 특별하게 여겨진다.
홍수민의 <비포 제인 오스틴>은 이렇듯 과거의 문학에서 희박한 몇몇 여성 작가의 이름을 겨우 그러모아 기억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목소리로 말을 건다. 사실 역사 속에서, 그것도 동서양과 시기를 막론하고, 여성 작가는 늘 있었다고. 남성 중심의 사회나 문학사가 숨기고 감추거나 애써 무시했지만 분명히 존재해왔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 증거를 담은 사례집이다.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다른 지역과 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사 활동한 여성 작가를 다룬다. <겐지 이야기>를 쓴 무라사키 시키부 이외에도 궁중에서 수필과 일기와 소설을 써온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1장은 헤이안 시대 가부장 질서 안에서 자신들만의 말과 글을 구축한 여성을 건져올린다. 1장이 궁녀의 이야기였다면 2장은 수녀원의 이야기다. 중세 유럽 시기 그나마 여성의 학문과 교육이 가능했던 수녀원에서 철학적 사유를 밀어붙이고 문학을 향유하던 이야기가 나온다. 3장은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만연한 15세기 프랑스의 분위기에 반기를 든 크리스틴 드 피장의 활약을 다룬다.
그런가 하면 기존의 “르네상스”가 보지 못한 이들, 특히 전업 여성 작가들의 활동이 돋보이는 4장은 기존의 안일한 통념에 대한 좋은 반례가 된다. 마거릿 캐번디시의 철힉적 주장을 다루는 5장은 그의 논의가 오늘날 신유물론이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 같은 첨단의 지식을 어떻게 선취했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6장은 궁정을 배경으로 한 서간문학과 소위 ‘로판’ 장르에 해당하는 소설을 다루며 단순히 귀부인에만 머물지 않았던 여성 작가들을 논한다.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건 책의 조밀한 만듦새다. <비포 제인 오스틴>은 그 두께와 무게만큼이나 어디서든 쉽게 펼쳐 읽을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쓰였다. 마치 썰을 풀듯 내용이 술술 펼쳐지지만, 그렇다 해서 그 깊이나 풍부함은 놓치지 않는다. 개별 인물들의 생애사와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자세하고도 폭넓게 다루는데, 이를 통해 각 여성 작가들이 왜, 얼마나, 어떻게 탁월했는지를 잘 알도록 해준다. 이런 내용을 평이하게 읽히도록 쓰기 위해 들였을 공력을 가늠해 본다. 실제로 책의 뒷부분에 위치한 참고문헌을 보면, 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위해 저자가 기울인 노력을 십분 느끼게 된다. 이런 저자의 노력은 눈길을 잡아끄는 제목들에 힘입어 즐거움을 더한다.
괴테가 ‘세계문학’을 언급한 이래로 그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이는 서구중심주의를 넘어 말 그대로 쓰이거나, 쓰였대도 들리지 못한 문화와 국가의 목소리를 듣는 부단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비롯한 소위 ‘이론’들이 지나간 이후에도, 세계문학이 조명하지 못한 맥락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과 문학사를 보는 우리의 인식적 한계와도 공명한다. <비포 제인 오스틴>은 그런 한계 바깥에서, 원래 있었으나 우리가 몰랐던 목소리를 들고 찾아오는 책이다.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단순히 갖가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최초의 문학이 된 여성이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들이 탁월하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나면 이를 알 수 있다. 나아가 책은 상상하게 한다. 더 많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말과 글이 언제 어디서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그 여성들의 문학이 필요하다.
* 본 글은 들녘출판사의 서평단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좋은 책을 내 주시고 서평단이 될 기회를 주신 들녘출판사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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