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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인간을 선택하며, <죠죠의 기묘한 모험>

탈해 2025. 11. 20. 10:39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

내용 자체보다는 이미 밈처럼 돼버린 대사들로 더욱 유명한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하 죠죠)>은 그 제목처럼 ‘기묘한’ 이미지로 소비된다. 수상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곳곳에 숨어 있고, 자칭 타칭 ‘죠죠러’라 불리는 이들은 기회만 되면 죠죠를 영업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죠죠러들의 이런 ‘만행’마저 일종의 밈처럼 소비되며 죠죠에 대한 이미지는 날로 기묘해지지만, 단순한 밈의 맥락을 넘어선 감상, 나아가 비평이 가능하진 않을까? 대체 무엇이 죠죠러들을 죠죠러로 만드는가? 이 글은 이런 질문에 대답해보려는 작은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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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골자에서 죠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국 귀족 가문의 죠나단 죠스타, 줄여서 ‘죠죠’는 숙적인 디오 브란도와 얽히면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선악’의 싸움을 지속한다. ‘죠죠’의 의지는 손자인 죠셉 죠스타, 그 손자인 쿠죠 죠타로 등을 거치며 계승된다. 착용자를 불사의 흡혈귀로 만드는 돌가면을 이용해 세계 정복과 인간 초월을 이루려는 디오 브란도의 욕망은 그 의지와 대립한다.

내용상으로 단순히 선악이 대립하는 연대기처럼 보이는 이 죠죠가 기묘한 지점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를테면 사람을 몇 명이나 집아먹은 거냐는 물음에 “너는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기억하나?“ 라고 대답하는 식의 파격적인 대사나 소위 ’죠죠서기‘로 칭해지는, 패션 화보 모델같은 인물들의 포즈가 그렇다. 진지한 그림체와 진지한 분위기에 “확실하다마다! 콜라를 마시면 트림이 나오는 것만큼 확실해!“처럼 아무렇지 않게 섞이는 이상한 비유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묘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을 초월한 어떤 문명의 흔적으로서 돌가면이란 소재부터가 기묘한 설정과 내용을 구성한다. 죠죠는 품위있는 죠스타 가문과 사악한 브란도 가문의 ‘운명적인’ 만남에 돌가면을 삽입함으로써 대립을 부채질한다.

죠죠서기



그리고 이 돌가면이 가지는 상징은 곧 죠죠의 주제의식으로 확대된다. 대립의 끝에서 디오 브란도는 돌가면을 꺼내들며 죠나단 죠스타에게 외친다.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 죠죠! 나는 인간을 초월할 테다!“ 그러고는 돌가면을 쓴 뒤 불로불사의 흡혈귀로 거듭난다. 평범한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이 흡혈귀에 맞서, 죠나단 죠스타는 태양으로부터 유래해 생명, 즉 호흡으로 운용하는 파문 에너지로 응수한다. 인간을 포기하고 햇빛으로부터 숨음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한 흡혈귀는 변동과 소멸로 이루어진 파문을 통해서만 상대할 수 있다. 이렇게 죠죠는 두 가지 축의 가치관을 대조해 메시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인간임을 포기한 영생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으로서 살고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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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내용은 죠죠 1부에 해당하는데, 이야기는 2부, 3부 등을 거치며 이어지는 동시에 변주된다. 그중에서 계승은 주제의식을 지속한다.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는 늙거나 죽는다. 그러나 인간성과 긍지, 나아가 세계를 위해 뛰어드는 의지는 언제나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의지는 늘 어두운 영원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그런가 하면 변화는 다채로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죠죠의 인물들은 시즌을 거듭하며 다양한 능력을 지닌 적들을 만나고 고전하지만, 대부분 그때그때의 상황과 지형지물을 활용해 기지를 발휘하고 위기를 넘긴다. 어떤 싸움은 겨우 끝나고, 또 어떤 싸움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끝난다. 적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며, 이에 대한 파훼법 역시 파훼의 순간까지 드러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죠죠가 지닌 재미가 드러난다.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3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스탠드’의 개념이다. 각 인물의 정신적 능력으로 발현되는 스탠드는 그들만이 가지는 고유능력으로, 불을 만들거나 치유하거나 공간을 지퍼처럼 열고 닫거나 노화를 조절하는 등 인물에 따라 다채로운 스탠드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다양성만큼이나 상황과 상성에 따라 다채로운 전장이 형성된다. 특별히 강하거나 똑똑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상황이 풀리지 않으며, 특별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도 각성과 성장을 거쳐 정의에 걸맞는 힘을 가진다.

쿠죠 죠타로의 스탠드 ‘스타 플라티나’



이런 점과 더불어, 앞서 ‘선악’의 싸움을 지속한다는 대목을 다시 가져와 보자. 굳이 따옴표를 친 이유는, 이 도식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죠죠는 선한 죠스타 가문과 악한 브란도 가문의 계속되는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즌이 이어지면서 이 기준은 이지러진다. 디오의 악에 사로잡혀 있던 인물이 도리어 ‘죠죠’ 일행과 함께 디오와 적대하기도 하고, 디오의 피를 물려받은 이가 나름대로의 옳은 길을 택하고 관철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성과 관련된 주제에서도 두드러진다. 인간성을 버리고 영원을 선택함으로써 주어지는 스탠드의 능력은 시간을 좌지우지한다. 악을 선택한 누군가는 시간을 멈추고, 누군가는 시간을 되돌리며, 누군가는 시간을 삭제한다. 그러나 오직 악한 자들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지는 않는데, 이를테면 3부의 쿠죠 죠타로의 스탠드는 디오와 마찬가지인 시간을 멈추는 능력으로 발현한다. 그러나 그가 시간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각성한다 해서 악으로 마음을 돌이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죠죠에서 말하는 ‘인간성’은 육체적, 물질적 조건에서 그치지 않으며 정신적, 윤리적 조건으로 이행한다. 인간을 포기하고 영원과 세계를 거머쥘 수 있는 힘이 꼭 인간성을 버리게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길 선택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될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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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 전반에 흐르는 이런 인간찬가의 메시지는 곳곳에서 드러나는 기묘함의 형식과 대위법을 이룬다. 우리는 죠죠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기묘함을 즐기지만, 이는 동시에 긍지 높은 삶-죽음을 향한 여로를 지켜보는 셈이다. 모험이 그저 싸움의 연속인 것만은 아니며, 한 개인의 투쟁에서 나아가 일정한 긍지와 의지를 가진 이들에 걸친 모든 것들은 곧 삶을 긍정하려는 커다란 움직임을 이룬다. 확실히 죠죠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기묘하다. 동시에 장엄하다. 이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죠죠의 최종적인 기묘함을 이룬다. 죠죠러는 이 기묘함을 공유하고 그 자장이 주는 감동에 머물고 싶어하는 이들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래서 결국 이 글은 함께 죠죠러가 되어 보자는 일종의 제안이다.